
《라라랜드》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노란 드레스인지, 밤하늘인지, 피아노 소리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그런데 어느 장면에서 출발하든 결국 음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데이미언 셔젤의 영화에서 노래는 감정을 예쁘게 덧칠하는 배경이 아닙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미래를 잠깐 살아보게 하고, 끝내 그 미래를 접어 두는 방식입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현실의 교통 체증을 노래와 춤으로 뒤집습니다. 도로 위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 채 멈춰 있지만, 음악이 시작되는 동안만큼은 한 공간에서 움직입니다. 이 장면은 ‘꿈을 좇으면 모두 성공한다’는 약속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답답한 현실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몇 분간의 합창이 더 눈부십니다. 《라라랜드》의 음악은 현실을 없애지 못합니다. 잠시 다른 리듬으로 살아볼 틈을 줍니다.
세바스찬의 피아노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말보다 먼저 들립니다. 재즈를 사랑한다는 설정이 단순한 취향 소개로 끝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정해진 곡만 반복하는 삶을 견디기 어려워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합니다. 자유롭게 연주하고 싶은 마음과 현실적인 선택 사이의 긴장은 그가 미아와 가까워질 때만이 아니라 멀어질 때도 따라다닙니다. 꿈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났다고 해서 두 꿈이 자동으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점이 이 영화의 쓰라린 곳입니다.
‘City of Stars’는 특히 단순하게 들리기에 더 오래 남습니다. 반짝이는 도시를 향한 노래인 동시에, 내가 여기서 혼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처럼 들립니다. 처음의 선율을 들을 때와 두 사람이 함께 노래할 때의 느낌이 달라지는 것은 가사가 엄청난 비밀을 밝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같은 도시를 바라보는 사람 곁에 누군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 노래가 화려한 성공의 찬가로 들리지 않는 까닭은 목소리와 피아노가 남겨 두는 빈자리에도 있습니다. 희망은 있지만 확신은 없습니다.
미아의 ‘Audition (The Fools Who Dream)’은 또 다른 방향으로 마음을 움직입니다. 오디션이라는 평가의 자리에서 미아는 완벽한 답을 제출하기보다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합니다. 앞서 계속 거절당했던 시간을 한 번에 지워주는 곡은 아닙니다. 실패가 있었기에 이 노래의 용기도 설득력을 얻습니다. 작품 속 음악을 듣다 보면 꿈을 좇는 일을 낭만화하고 싶은 마음과 그 대가를 아는 마음이 동시에 올라옵니다. 영화가 한쪽만 택했다면 이렇게 오래 회자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마지막 피아노 장면은 음악의 역할을 가장 분명히 보여줍니다. 세바스찬이 건반을 누르자 영화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았을지도 모를 시간을 펼쳐 보입니다. 화면은 눈부시고 흐름은 매끄럽습니다. 실제 삶에서는 어긋났던 순간들이 음악 안에서는 다른 결과로 이어집니다. 그 짧은 시간에 관객도 마음속으로 한 편의 다른 영화를 봅니다. 그래서 음악이 멈추고 현재로 돌아왔을 때의 정적이 크게 느껴집니다. 피아노는 시간을 되돌린 것이 아니라,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들을 수 있게 한 셈입니다.
이 결말이 아름답다고 해서 두 사람의 이별이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서로의 꿈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도, 결국 함께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동시에 남습니다. 마지막에 오가는 시선은 ‘다 잘됐다’는 간단한 위로보다 복잡합니다. 사랑이 끝나도 함께 들었던 음악은 삶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어떤 관계는 지속되는 방식보다 남기는 방식으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저스틴 허위츠의 음악이 이 영화에서 특별한 이유는 슬픔과 환희를 별개로 정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같은 선율이 장면과 시간에 따라 다른 얼굴을 갖습니다. 처음에는 가능성처럼 들린 멜로디가 끝에서는 가능했지만 살아내지 못한 시간의 소리로 바뀝니다. 《라라랜드》를 다시 본다면 좋아하는 노래가 언제 나오는지만 기다리기보다, 노래가 끝난 뒤 인물들이 어떤 표정으로 현실에 남는지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그 조용한 순간까지가 이 영화의 음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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