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 9월 23일 한국 극장에서 먼저 공개된다. 《버닝》 이후 8년 만의 장편이고,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직후라 기대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만 보고 익숙한 멜로를 예상하면 조금 다른 작품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영화가 사랑을 묻는 방식은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하는가가 아니라, 노동과 계급이 달라진 뒤에도 우리가 타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가에 가깝기 때문이다.
두 부부를 마주 세운 이유
영화의 중심에는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찍으려는 감독과 남편이 있다. 네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지만 돈과 직업,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위치가 다르다. 이창동은 한쪽을 선한 피해자로, 다른 한쪽을 차가운 관찰자로 간단히 나누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행동 안에도 욕망과 우월감이 섞일 수 있다는 불편한 질문을 만든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단순한 촬영 도구가 아니다. 누가 누구를 바라보고, 누구의 이야기를 대신 말하며, 그 과정에서 누가 다시 상처받는지를 드러내는 장치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인물은 타인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려 하지만, 현실의 주인이 아닌 사람이 고통을 이미지로 바꾸는 순간 윤리적인 문제가 생긴다.
사랑이 가능한 조건을 묻다
이창동 영화의 인물들은 대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품는다. 《밀양》의 신애와 《버닝》의 종수처럼, 상처는 하나의 말로 정리되지 않는다. 《가능한 사랑》 역시 사랑을 따뜻한 감정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상대의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곁에 머물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제목의 ‘가능한’이라는 말도 그래서 흥미롭다. 사랑이 이미 존재한다고 선언하지 않고,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 속에서 아직 선택할 수 있는 행동으로 남겨 둔다. 해고와 불평등, 사라지는 노동의 의미가 개인의 관계를 흔들 때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에 가까워진다.
164분을 극장에서 볼 이유
《가능한 사랑》의 러닝타임은 약 164분이다. 빠른 사건과 즉각적인 결론을 기대한다면 길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창동의 영화에서 시간은 인물을 판단하기 전에 머뭇거리게 만드는 장치다. 표정이 바뀌고 침묵이 쌓이는 동안 관객은 어느 한 사람의 입장에 쉽게 정착하지 못한다.
이번 작품은 극장 선공개 뒤 넷플릭스로 공개된다. 화면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차이는 중간에 멈추지 않고 네 사람의 시간을 함께 견디는 경험일 것이다. 수상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보는 영화라기보다, 왜 이 이야기가 지금 세계의 관객에게 필요한 질문이 되었는지를 생각하며 볼 만하다.
《가능한 사랑》을 볼 때는 세 가지를 따라가 보자. 누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지, 네 사람의 관계에서 노동과 돈이 언제 모습을 드러내는지, 그리고 인물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 영화가 무엇을 보여주는지다. 그 지점을 놓치지 않으면 제목 속 ‘가능한’이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아주 어려운 선택이라는 사실이 보일 것이다.
이창동 감독이 음악보다 침묵으로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은 ‘이창동 영화에는 왜 음악이 거의 없을까?’에서 이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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