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작곡가들의 기행
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 많습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바흐의 푸가… 이 위대한 음악을 창조한 작곡가들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천재성과 기행은 종종 함께한다고 하는데, 클래식 음악사 속에서도 독특한 습관과 괴짜 같은 면모를 보인 작곡가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그들의 기행을 들여다보면서 천재들의 독특한 일상을 엿보겠습니다.
1. 베토벤: 찬물 샤워와 수상한 작곡 방식
베토벤은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작곡할 때 머릿속에서 떠오른 멜로디를 계속 흥얼거렸는데, 이 과정에서 큰 소리로 고함을 치거나 테이블을 두드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하숙집 주인들은 종종 그를 내쫓았다고 하죠.
또한, 베토벤은 매일 아침 찬물로 머리를 씻으며 작곡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심지어 물을 대야에 붓고 머리에 끼얹으며 소리를 질렀다고 하는데, 당시 이웃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정리정돈도 못 했고, 하숙집은 늘 난장판이었으며, 돈 계산도 서툴러서 친구들이 대신 관리해줬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기막힌 선율이 끊임없이 흘러나왔습니다.
2. 리스트: ‘피아노 불태우는 남자’와 스타 음악가의 삶
프란츠 리스트는 19세기 클래식 음악계의 ‘록스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연주회에서 어찌나 격정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했던지, 마치 피아노가 불타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리스트가 피아노를 불태웠다’는 도시 전설이 생기기도 했죠. 실제로는 피아노가 부서질 정도로 격렬한 연주를 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습니다.
그는 외모도 출중했고, 연주할 때 특유의 제스처와 열정적인 표현으로 많은 여성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습니다. ‘리스트마니아(Listzomania)’라는 단어까지 생겼을 정도입니다. 그의 연주회에서는 여성들이 기절하거나, 심지어 리스트의 장갑과 담배꽁초까지 수집했다고 합니다.
또한, 리스트는 자선 활동에도 열심이었습니다. 친구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면 거액을 기부하거나, 직접 자선 연주회를 열어 도왔습니다. 화려한 스타였지만, 속 깊은 따뜻한 면모도 있었던 것이죠.
3. 차이콥스키: 머리가 떨어질까 봐 두려웠던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극심한 불안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는 자신의 머리가 떨어질 것이라는 강박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지휘를 할 때면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있었는데, 이는 혹시라도 머리가 떨어질까 봐서였다고 하죠.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었지만, 차이콥스키는 이를 진심으로 걱정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무대 공포증이 심해서 지휘를 맡으면 극도로 긴장했다고 합니다. 어떤 날은 아예 지휘를 포기하고 관중석에서 자기가 작곡한 곡을 들으며 불안에 떠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의 음악이 이렇게 감성적이고 드라마틱한 이유는, 그가 실제로 감정 기복이 심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4. 사티: 7벌의 회색 벨벳 정장만 입은 남자
에릭 사티는 ’짐노페디(Gymnopédie)’로 유명한 작곡가지만, 그의 생활은 그야말로 괴짜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평생 같은 옷만 입었는데, 정확히 7벌의 회색 벨벳 정장만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벨벳 신사’라고 불렀죠.
사티의 집은 더욱 기이했습니다. 그는 27개의 우산을 수집했고, 방 안에는 이상한 물건들이 가득했습니다. 친구가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손님이 자기 집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조차도 방 안이 얼마나 엉망인지 몰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술을 매우 좋아했지만, 독특하게도 단 한 종류의 술—압생트(Absinthe)만 마셨다고 합니다. 압생트는 그 당시 ‘예술가의 술’이라 불리며 많은 예술가들이 즐겼지만, 사티는 압생트에 대한 집착이 유독 강했습니다.
5. 슈베르트: 음악을 위해 가난을 감수한 작곡가
슈베르트는 가난한 작곡가로 유명합니다. 그는 멜로디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천재였지만, 경제적으로는 너무 무능했습니다. 친구들이 돈을 모아주며 생활을 도와줬고, 심지어 자기 침대도 없어서 다른 사람의 집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그는 유독 안경을 많이 썼습니다. 당시 사진을 보면, 슈베르트는 항상 둥근 안경을 쓰고 있는데, 이는 그의 눈이 매우 나빴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 농담 삼아 ‘슈베르트는 안경 없이는 세상을 볼 수 없지만, 음악으로 세상을 본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낮에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밤에는 작곡에 몰두하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유로운 삶을 살다가 겨우 3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음악 속에서 영원히 살아남았습니다.
현대 음악가들의 기행과 독특한 습관
과거 클래식 작곡가들처럼, 현대 음악가들 중에도 기행을 보이는 사례는 많습니다. 천재성과 독창성을 지닌 예술가들은 때때로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1. 글렌 굴드: 연주할 때마다 이상한 자세를 취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바흐 연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지만, 그의 연주 자세는 매우 특이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어릴 때 만들어준 낮은 나무 의자에만 앉아 연주했는데, 일반적인 피아노 벤치보다 훨씬 낮아서 그는 피아노 위에 거의 엎드리듯이 연주하곤 했습니다. 심지어 이 의자는 낡고 해져서 다리가 부러지기 직전까지 갔지만, 그는 절대 바꾸지 않았습니다.
또한, 굴드는 연주 중에 끊임없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녹음할 때도 이를 멈추지 않아서, 그의 음반에서는 미세하게 콧노래 소리가 들리곤 합니다. 오디오 엔지니어들은 이를 없애려고 했지만, 굴드는 개의치 않았죠.
추운 날씨에도 장갑을 낀 채로 손을 얼리지 않으려는 강박이 있었고, 사람들과의 신체 접촉을 꺼려 악수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31세에 공개 연주를 완전히 중단하고, 이후 오직 녹음 작업에만 집중했습니다.
2.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매일 물구나무를 섰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혁신적인 음악을 만든 작곡가지만, 그의 일상도 혁신적이었습니다. 그는 창의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물구나무를 서는’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혈액순환이 잘 되고 뇌가 더 활발하게 작동한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만 창작이 잘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정확히 5시간씩 작곡하고, 그 이후에는 절대 음악 작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3. 데이빗 보위: 창작을 위해 강박적인 행동을 했던 전설적인 뮤지션
록 음악계의 아이콘인 데이빗 보위도 창작을 위한 독특한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사를 쓸 때 ’낱말 자르기 기법(cut-up technique)’을 사용했는데, 이는 신문이나 책에서 단어들을 오려서 무작위로 배열한 후,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런 기법은 그의 가사에 독특한 분위기를 더했습니다.
또한, 보위는 자신을 완전히 다른 캐릭터로 몰입시키는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 ‘씬 화이트 듀크(Thin White Duke)’ 같은 페르소나를 만들어 연기에 가까운 음악 활동을 했죠.
이러한 방식은 그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을 창조할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4. 존 케이지: 우연과 침묵을 음악으로 만든 실험가
현대 음악의 실험 정신을 대표하는 작곡가 존 케이지는 ‘무작위성’과 ‘침묵’을 음악으로 승화한 인물입니다. 그의 대표작 4분 33초(4’33”)는 연주자가 4분 33초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곡입니다. 이는 “침묵 속에서도 음악이 존재한다”는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죠.
그는 또한 음식에도 강한 집착이 있었습니다. 버섯을 연구하는 것을 좋아해서 직접 채집하러 다녔고, 심지어 버섯에 관한 책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냉장고에는 항상 여러 종류의 버섯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5. 톰 요크(라디오헤드): 스튜디오에서 기이한 행동을 반복하는 뮤지션
라디오헤드의 프론트맨 톰 요크는 녹음할 때 강박적인 행동을 많이 보였습니다. 같은 부분을 수백 번 반복해서 녹음해야 만족했고, 작은 소리 하나도 계속 수정하면서 완벽한 테이크를 찾으려 했습니다.
특히 그는 무대에서 몸을 비틀며 춤을 추는 독특한 퍼포먼스로 유명한데, 이는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실제로 그가 음악에 몰입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이라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라디오헤드의 앨범 Kid A는 의도적으로 기존의 방식과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는데, 밴드 멤버들은 ‘자신들이 절대 연주하지 않는 악기’를 가지고 실험하며 곡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천재성과 기행, 그 경계에서
이처럼 작곡가들은 각자 독특한 습관과 기행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지독한 완벽주의자였고, 누군가는 가난을 감수하면서도 음악을 사랑했습니다. 괴짜 같은 면모가 많았지만,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창조성을 뒷받침하는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때때로 ‘천재는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고 말합니다. 음악사 속의 괴짜 작곡가들을 보면, 이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남긴 음악이고, 그 음악이 오늘날까지도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 아닐까요?
여러분이 가장 흥미롭게 느낀 작곡가는 누구인가요? 혹시 본인도 작곡가들처럼 독특한 습관을 가지고 있지는 않나요? 여러분만의 창작 루틴이 있다면 공유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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