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잃고 음악을 완성한 사나이’ – 베토벤의 청력 상실과 그 극복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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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청력 상실과 그 극복의 서사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끝일까? 베토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강렬한 이름 중 하나,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그의 음악은 폭풍처럼 격정적이고, 고요한 물결처럼 섬세합니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 ‘소리’를 다루는 사람이 평생의 절반을 들을 수 없는 상태로 살았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오늘은 음악 문화 평론가의 시선으로, 베토벤의 청력 상실과 이를 딛고 일어선 그의 창작 세계를 가까이 들여다보겠습니다.

 

 

 

청력 상실의 시작 – 26세, 너무도 이른 신호

 

1796년경, 베토벤이 26세 무렵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빈(Wien) 사교계에서 촉망받는 젊은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죠.

하지만 그 즈음, 그는 이상한 소음을 듣기 시작합니다.

이명(耳鳴)과 청력 저하.

처음엔 조용한 방에서만 느껴졌던 소리가, 점점 연주 중에도 그의 귀를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그 원인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학자들은 만성 납 중독, 자가면역 질환, 혹은 유전적 요인 등을 거론합니다.

 

특히 납 중독은 당시 사용되던 주석잔, 물감, 화장품 등에 광범위하게 존재했으며,

심지어 베토벤이 즐겨 마셨던 와인에도 납이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 절망과 창작 사이의 외침

 

1802년, 베토벤은 빈 외곽의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t)라는 마을에서 요양을 하며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뇌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유서를 씁니다.

 

“나는 내 인생을 마무리해야만 하는가? 예술이 나를 붙들어 놓았다.”
–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중

 

 

그는 청력 상실로 인해 세상과의 소통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예술’이라는 단어가 그를 붙잡았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베토벤의 생애에서 전환점이 됩니다.

그는 절망 속에서도 창작을 멈추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소리를 보며 작곡하다 – 악보로 듣는 음악

 

그의 청력은 1810년대 중반을 지나며 거의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베토벤은 이미 청력 상실 이전에 매우 정교한 음악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음을 듣고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왔습니다.

또한, 그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나무판에 막대기를 물고 소리를 진동으로 ‘느끼는’ 방식으로

자신의 연주를 감지했다고 전해집니다.

 

 

 

‘운명’, ‘합창’, ‘고요한 음악’ – 들리지 않는 시대의 걸작들

 

청력을 잃은 이후, 그의 작품은 더욱 대담해지고 깊어졌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는 바로 교향곡 5번 ‘운명’.

이 곡은 어둠을 두드리는 운명의 소리를 그리고 있죠.

그가 들을 수 없던 시대에 완성한 또 하나의 걸작은 교향곡 9번 ‘합창’입니다.

이 곡의 마지막 악장은 “환희의 송가(Ode to Joy)”로 유명하죠.

 

베토벤은 이 곡을 초연할 당시 무대에서 지휘하는 듯 몸짓을 보였지만,

실제로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가수가 그를 돌려 세워 관객을 보여주었다는 일화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립니다.

 

 

 

예술가로서의 위대함 – 청력을 잃었기에 더 넓어진 세계

 

청력을 잃는다는 것은 음악가에게 가장 끔찍한 형벌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자신의 ‘결핍’을 예술의 연료로 삼았습니다.

그는 고통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고통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인간의 내면을 응시하는 예술을 완성했습니다.

 

그가 소리를 잃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9번 교향곡, 피아노 소나타 ‘비창’이나 ‘월광’을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소리를 잃은 대신, 그는 영혼의 진폭을 더 넓히는 법을 선택했습니다.

 

 

 

마무리하며 – 음악은 결국 듣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베토벤의 삶은 단순한 음악가의 이야기를 넘어

‘무너진 조건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깊고 울림 있는 서사입니다.

 

그는 청력을 잃었지만, 우리는 그를 통해 더 깊게 듣는 법을 배웁니다.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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