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는 얼마나 완벽주의자였을까? – 위대한 푸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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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바흐는 얼마나 완벽주의자였을까? – 위대한 푸가 이야기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이름만 들어도 음악의 정점에 선 사람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그의 음악은 수학적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적이고, 종교적이면서도 대단히 세속적인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바흐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논란과 찬사를 동시에 받은 곡이 있으니, 바로 ‘위대한 푸가(The Art of Fugue)’입니다. 독일어 원제는 “Die Kunst der Fuge”, 영어로는 “The Art of Fugue”. 푸가의 기술 혹은 예술이라 번역되는 이 작품은 바흐가 남긴 마지막 유작이기도 하지요.

 

바흐는 말년에 들어서면서도 새로운 음악적 언어를 탐색했습니다. 그가 푸가라는 형식을 탐구한 것은 단순히 고전 양식을 정리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푸가라는 한정된 형식 안에서 무한한 음악적 가능성을 찾고자 했고, 그 안에 자신의 모든 이론과 철학, 신념을 담으려 했습니다. 이쯤 되면 ‘완벽주의자’라는 말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푸가란 무엇인가요?

간단히 말하자면, 하나의 주제가 여러 성부(파트)에서 엇갈리며 반복되는 음악 형식입니다. 하지만 바흐에게 있어 푸가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질서와 혼돈, 인간과 신의 대화를 담는 언어였습니다. 그는 이 제한된 구조 안에서 대위법을 통해 우주적인 조화를 표현하려 했습니다.

 

 

위대한 푸가의 위대함은 어디서 오는가?

첫째, 이 작품은 주제가 하나로 시작해 무려 14개의 푸가(‘콘트라풍크투스’)와 4개의 캐논으로 확장됩니다. 각 푸가는 전작보다 점점 더 복잡해지고, 마지막에 이르면 하나의 주제 위에 세 개의 새로운 주제가 더해지는 4중 푸가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푸가는 미완성으로 끝납니다. 그 유명한 주석, “이 지점에서 작곡가는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 바로 여기에 붙습니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바흐가 단순히 미완성으로 남긴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음악의 끝없는 가능성과, 신 앞에서의 인간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 제스처였을지도 모르죠. 이런 해석이 가능한 것도 바흐가 얼마나 계산적이고 철저한 사고를 가진 작곡가였는지를 보여줍니다.

 

 

바흐가 위대한 푸가에서 사용한 음악적 장치들을 현대 음악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까?

 

바흐가 위대한 푸가에서 구사한 음악적 기법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장치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대위법 (Counterpoint)

바흐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대위법은 각 성부가 독립적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구조입니다. 이 기법은 오늘날 클래식 작곡가들뿐 아니라 재즈, 영화음악, 심지어 프로그레시브 록이나 EDM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 영화음악가 한스 짐머의 작곡 기법 중 일부는 대위법적 사고를 바탕으로 멜로디를 쌓는 데서 유래합니다.

 

2. 푸가(Fugue) 자체의 구조

푸가는 일종의 ‘음악적 퍼즐’입니다. 바흐 이후의 작곡가들, 예를 들어 베토벤, 브람스, 쇼스타코비치, 그리고 현대 작곡가 리게티, 스티브 라이히 등은 이 구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사용했습니다.
특히 스티브 라이히의 “Counterpoint” 시리즈나 “Music for 18 Musicians” 같은 곡은 리듬과 구조의 반복, 변형이라는 면에서 바흐적 사고를 계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수학적·논리적 구성

위대한 푸가는 거의 수학적 정밀도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이런 구조적 사고는 오늘날의 알고리즘 작곡, AI 기반 음악 제작, 혹은 미니멀리즘 계열의 음악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예) Radiohead의 “Pyramid Song”이나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같은 곡들은 대위적 성격, 수학적 리듬 설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바흐의 기술은 시대를 초월해 현대 음악의 기초 언어로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다른 장르에서도 그 영향력을 쉽게 포착할 수 있죠.

 

 

위대한 푸가의 미완성 부분에 대한 음악적 해석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것이 바흐의 의도일 수 있는 근거는?

 

1. 실제로 완성 전에 죽었다는 해석

전통적으로는 바흐가 마지막 푸가(Contrapunctus XIV)를 쓰다가 병으로 쓰러졌고, 이후 그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견해가 우세했습니다. 그의 아들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는 이 푸가의 필사본 끝에 “여기서 작곡가는 세상을 떠났다”는 주석을 남겼죠.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단순한 결론입니다.

 

2. 상징적 의도 해석 – ‘의도적 미완성’

이 해석은 최근 들어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마지막 푸가는 무려 세 개의 주제를 푸가 형식으로 통합하려는 시도였는데, 그 중 세 번째 주제는 바흐 자신의 이름 B-A-C-H (독일식 음명: B♭-A-C-B)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이 등장하면서 곡이 끝나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바흐가 자신의 이름을 푸가에 넣으며 ‘나는 여기까지다’라는 예술적 선언을 했다고 봅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바흐는 인간이 완전함에 도달하려는 시도는 무한하다는 점을 표현하려 했고, 미완성은 그 자체로 완성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셈입니다.

 

3. 청중의 상상에 여백을 남기는 예술적 장치

이 관점은 현대 예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논의입니다. 일부는 바흐가 철학적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푸가를 마치지 않았다고 봅니다. “당신이 완성하시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죠.
예술의 의미는 청중이 완성하는 것이라는 생각과 일맥상통하며, 이후 많은 작곡가들이 이를 오마주처럼 반복하게 됩니다.

 

 

이러한 해석들이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가능한 근거를 갖는 이유는 바흐의 평생에 걸친 철저한 음악적 계획성과 구조에 있습니다. 그가 아무렇게나 마무리했을 가능성은 낮고, ‘미완성’마저 하나의 기획이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바흐는 완벽주의자였을까?

바흐는 완벽주의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지 음정 하나하나를 다듬는 장인형 완벽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철학적 완벽주의자였고, 신학적 완벽주의자였으며, 우주적 질서를 음악 속에 구현하려는 이상주의자였습니다. 그의 손에서 나온 악보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신에 대한 경외와 인간의 사유, 그리고 존재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 담긴 철학서 같았습니다.

 

위대한 푸가는 그래서 지금 들어도 낯설고도 경이롭습니다. 다 듣고 나면 마치 한 권의 긴 책을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단순히 고전 음악 감상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이 만든 예술의 가장 정제된 형태 중 하나를 마주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바흐는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알았던 것처럼, 위대한 푸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쩌면 그는 끝맺음을 거부함으로써, 완전함이란 끝이 아니라 과정에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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