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영화에는 왜 음악이 거의 없을까?
《밀양》·《시》·《버닝》 그리고 《가능한 사랑》, 침묵까지 음악으로 만드는 감독
영화를 보다가 눈물이 나는 순간이 있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
피아노가 조용히 들어온다.
현악기가 길게 이어지고 음악은 조금씩 커진다.
우리는 어느 순간 안다.
아, 여기서 슬퍼해야 하는구나.
영화음악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똑같은 얼굴을 보여줘도 어떤 음악을 붙이느냐에 따라 슬픈 장면이 될 수도 있고, 불안한 장면이 될 수도 있고, 우스운 장면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화는 음악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이 강력한 도구를 이상할 정도로 아껴 쓰는 감독이 있다.
이창동이다.
《밀양》을 다시 보면 음악이 없는 시간이 놀랄 만큼 길다.
《시》도 그렇다.
그리고 《버닝》에 이르면 음악과 소음의 경계마저 흐려진다.
2026년 신작 《가능한 사랑》에서도 이런 태도는 이어진다.
이번에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으로 잘 알려진 정재일이 음악을 맡았다.
그런데 이창동은 정재일이라는 뛰어난 음악가와 작업하면서도 음악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왜일까?
그 답을 따라가다 보면 이창동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밀양》에서 《가능한 사랑》까지. 이창동의 영화에는 음악이 없는 시간이 유난히 길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자세히 들어보면 침묵이 아니라 사람의 숨소리와 생활의 소리, 그리고 영화 자체의 리듬이 들어 있다.
이창동은 음악이 감정을 '설명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창동은 자신의 영화에서 음악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비교적 분명하게 이야기해왔다.
특히 《버닝》을 만들 당시 그의 설명이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영화음악은 장면의 감정을 강화한다.
긴장되는 장면에서는 긴장감을 높이고, 로맨틱한 장면에서는 사랑의 감정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이창동은 음악이 그렇게 장면에 종속되는 방식을 원하지 않았다.
《버닝》의 음악감독 모그에게도 음악이 장면의 감정을 단순히 증폭시키기보다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를 요구했다.
심지어 음악인지 소음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소리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이 말을 이해하면 이창동 영화에서 음악이 적은 이유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에게 음악의 문제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다.
관객에게 감정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다.
음악은 생각보다 관객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한 여자가 혼자 방에 앉아 있다고 생각해보자.
대사는 없다.
표정도 거의 없다.
여기에 슬픈 피아노를 넣으면 우리는 그녀가 슬프다고 생각한다.
불협화음을 넣으면 곧 위험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밝은 음악을 넣으면 오히려 평화로운 순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화면은 그대로인데 음악이 장면의 의미를 바꾼다.
이것이 영화음악의 힘이다.
하지만 이창동에게는 바로 그 힘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음악이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면 관객이 인물을 직접 바라볼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슬프다."
"이 장면은 비극적이다."
"지금 감동해야 한다."
음악이 이런 메시지를 먼저 전달해버릴 수 있다.
그래서 이창동 영화에서는 감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순간에도 음악이 뒤로 물러나는 경우가 많다.
관객에게 감정을 설명하는 대신,
그 사람을 그냥 바라보게 한다.
《밀양》 — 음악 없이 고통을 바라보는 시간





음악이 감정을 설명하지 않을 때, 관객은 신애의 얼굴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밀양》은 이런 특징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영화 중 하나다.
신애는 남편을 잃은 뒤 아들과 함께 밀양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감당하기 힘든 비극을 경험한다.
상실.
절망.
종교적 구원.
분노.
광기.
그리고 다시 일상.
음악이 감정을 극대화하기 좋은 순간이 수도 없이 등장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영화는 의외로 담담하다.
신애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카메라는 쉽게 울지 않는다.
음악 역시 관객에게 먼저 울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도연의 얼굴이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음악이 알려주는 감정을 따라가는 대신 그 얼굴에서 감정을 찾아야 한다.
슬픈 것인가.
화가 난 것인가.
신을 원망하는 것인가.
자기 자신을 원망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명확하지 않다.
바로 그 모호함이 《밀양》의 감정을 만든다.
음악이 사라진 자리에서 배우의 얼굴이 음악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시》 — 음악 대신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




《시》에서 음악이 물러나면 바람과 물, 사람의 목소리 같은 세상의 소리가 앞으로 나온다.
《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주인공 미자는 시를 배우기 시작한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
사과를 바라보고,
꽃을 바라보고,
나무를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본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작품 소개에서도 미자의 시 쓰기는 이전까지 의식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던 일상의 아름다움을 관찰하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그런데 영화에서 '바라보는 것'과 '듣는 것'은 묘하게 연결돼 있다.
음악이 화면을 덮지 않으면 다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사람이 걷는 소리.
바람.
자동차.
새소리.
사람들의 대화.
생활의 소음.
이것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영화음악은 아니다.
하지만 이창동 영화에서는 이런 현실의 소리들이 음악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래서 《시》를 보고 있으면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기억에 남는 OST는 많지 않은데,
영화 전체에는 분명한 리듬이 있다.
그 리듬은 멜로디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걷는 속도.
대사가 끝난 뒤 남아 있는 침묵.
카메라가 인물에게서 떠나지 않는 시간.
장면과 장면 사이의 간격.
그 모든 것이 모여 영화의 리듬을 만든다.
영화에는 음악이 없어도 '음악성'이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하나 생긴다.
음악과 음악성은 다르다.
OST가 많다고 반드시 음악적인 영화인 것은 아니다.
반대로 배경음악이 거의 없어도 영화는 충분히 음악적일 수 있다.
영화에도 리듬이 있기 때문이다.
숏의 길이.
배우의 움직임.
대사의 속도.
편집.
침묵.
공간의 소리.
빛의 변화.
이 모든 것이 반복되고 변주되면서 리듬을 만든다.
생각해보면 음악 역시 시간의 예술이다.
음 하나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
다음 음이 언제 등장하는가.
그리고 어디에서 멈추는가.
영화도 마찬가지다.
카메라가 얼마나 오래 머무르는가.
배우가 언제 말하는가.
언제 침묵하는가.
언제 장면이 끝나는가.
그래서 이창동 영화가 때때로 느리게 느껴지는 것도 단순히 '느린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그 시간 안에서 관객이 인물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스스로 감정을 발견할 여백이 만들어진다.
《버닝》 — 음악과 소음의 경계

노을, 바람, 해미의 춤,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 아름답지만 어딘가 불길한 《버닝》의 순간.
그러다가 《버닝》에서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음악감독 모그(Mowg)가 참여하면서 이전 이창동 영화보다 음악과 사운드가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영화음악과는 조금 다르다.
이창동이 모그에게 원했던 것은 아름다운 멜로디가 아니었다.
음악인지 소음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 음악.
그는 《버닝》의 음악이 장면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음악으로 긴장감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음악 자체가 낯선 감정을 만들어내기를 원한 것이다.
그래서 《버닝》을 보고 있으면 음악이 들리고 있는데도 그것이 음악인지 공간의 소리인지 순간적으로 모호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 모호함은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
《버닝》 자체가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상상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음악 역시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해미의 춤과 마일스 데이비스
《버닝》의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해미가 노을을 등지고 춤을 추는 장면이다.
벤과 종수 앞에서 해미는 상의를 벗고 자유롭게 춤을 춘다.
하늘은 천천히 어두워지고 있다.
멀리 산이 보인다.
바람이 분다.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이 흐른다.
사용된 곡은 루이 말 감독의 1958년 영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를 위해 마일스 데이비스가 만든 음악이다.
이창동은 이 장면에서 재즈가 가진 자유로움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마치 시작과 끝이 없는 것처럼 흘러가는 재즈의 성격이 해미의 춤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 흥미로운 이유가 있었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라는 제목이다.
그 제목이 가진 불길한 느낌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장면에는 서로 반대되는 감정이 동시에 존재한다.
자유롭다.
아름답다.
쓸쓸하다.
그리고 어딘가 불길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장면 중간에 음악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이 장면을 분석한 영화 연구에 따르면 약 251초에 이르는 긴 숏에서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이 중간에 멈추고, 그 자리를 시골의 현실음이 대신한다.
음악이 사라지자 해미의 감정 역시 변한다.
자유롭게 춤추던 해미는 울기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음악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아마 이것이 이창동이 영화음악을 사용하는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일 것이다.
좋은 영화음악은 감정을 키우는 음악일까?
일반적인 영화음악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창동 영화를 보다 보면 조금 다른 질문이 생긴다.
좋은 영화음악은 관객에게 더 강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음악일까?
아니면 관객이 자신의 감정을 발견할 공간을 남겨주는 음악일까?
이창동은 후자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서는 음악이 등장할 때 오히려 더 강하게 느껴진다.
20분 동안 음악이 계속 흐르는 영화에서는 음악이 공기처럼 익숙해진다.
하지만 오랫동안 음악이 없다가 갑자기 음악이 등장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침묵이 음악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가능한 사랑》 — 정재일과 이창동


8년 만에 돌아온 이창동. 《가능한 사랑》에서는 정재일과 어떤 방식으로 침묵과 음악을 배치했을까.
2026년 《가능한 사랑》에서 이창동은 새로운 음악가와 만났다.
정재일이다.
《기생충》.
《옥자》.
《오징어 게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
정재일은 음악 자체로 영화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작곡가다.
그래서 이창동과 정재일의 만남은 흥미롭다.
한 사람은 영화음악을 극도로 절제하는 감독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음악만으로도 강렬한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작곡가다.
두 사람의 만남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것인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어디까지 음악을 사용하고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그 선택이 더 중요해진다.
작곡보다 어려운 것은 '쓰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음악가에게 많은 음악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최소한의 음악으로 영화 전체의 구조와 감정을 지탱하라고 요구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언제 음악을 넣을 것인가.
언제 음악을 빼야 하는가.
몇 개의 음만 남길 것인가.
그리고 언제 침묵에게 자리를 내줄 것인가.
이창동 영화에서 음악감독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인 동시에 음악을 사용하지 않을 순간을 결정하는 사람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재일과 이창동의 만남은 꽤 흥미롭다.
정재일이 얼마나 좋은 음악을 만들었는지만큼,
이창동이 그 음악을 어디에서 사용하지 않았는지를 듣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재미가 될 수 있다.
영화의 음악은 어디에 있는가
이창동의 영화들을 다시 보고 나면 재미있는 질문이 하나 남는다.
영화음악은 어디에 있는가.
스피커에서 들리는 피아노와 현악기만 음악일까?
아니면
《밀양》에서 신애가 숨을 쉬는 소리,
《시》에서 미자가 천천히 걷는 속도,
《버닝》에서 바람이 들판을 지나가는 소리,
배우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몇 초의 침묵,
그것 역시 영화의 음악일까.
이창동은 후자까지 영화의 음악적 세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감독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서는 음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음악의 범위가 넓어진다.
OST가 물러난 자리로 배우의 목소리가 들어온다.
생활의 소리가 들어온다.
침묵이 들어온다.
그리고 시간이 들어온다.
그래서 이창동의 영화에는 음악이 적다
이창동 영화에 음악이 적은 이유는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음악이 관객에게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으로 슬픔을 만들 수 있다.
음악으로 긴장을 만들 수 있다.
음악으로 감동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감정이 정말 인물에게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음악이 관객에게 알려준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창동은 그 사이에 거리를 둔다.
인물을 보여준다.
기다린다.
관객이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감정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남겨둔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서 침묵은 빈 공간이 아니다.
침묵 역시 하나의 선택이다.
《밀양》에서는 배우의 얼굴이 음악을 대신하고,
《시》에서는 일상의 소리가 음악이 된다.
《버닝》에서는 음악과 소음의 경계를 흐리고,
《가능한 사랑》에서는 정재일과 함께 다시 음악의 절제를 실험한다.
결국 이창동에게 좋은 영화음악은 이런 것이 아닐까.
관객에게 무엇을 느끼라고 말하는 음악이 아니라,
관객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주는 음악.
그래서 그의 영화가 끝나고 나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기억나는 멜로디는 많지 않은데,
영화 전체의 리듬은 오래 남는다.
어쩌면 그것이 이창동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인지도 모른다.
들리지 않는 음악.
참고자료
- Korean Film Council, 《밀양(Secret Sunshine)》 작품정보
- Korean Film Council, 《시(Poetry)》 작품정보
- MovieMaker Magazine, 이창동 《버닝》 인터뷰
- Cinema Scope, 이창동 《버닝》 인터뷰 및 모그 음악 관련 내용
- Film Criticism, 《버닝》 해미의 춤 장면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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