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오징어 게임》, 《가능한 사랑》의 음악을 만든 정재일. 같은 작곡가인데 왜 봉준호와 이창동의 영화에서는 전혀 다르게 들릴까? 정재일의 음악 세계와 두 감독의 영화음악 작업 방식을 살펴봅니다.
《기생충》의 음악을 기억하시나요?
기택 가족이 박 사장 집에 하나씩 침투할 때 흐르던 우아한 현악기.
마치 오래된 바로크 음악을 듣는 것 같은데, 어딘가 조금 이상하고 기묘했던 음악.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이 정재일입니다.
그런데 정재일의 작품 목록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옥자》도 정재일.
《기생충》도 정재일.
《오징어 게임》도 정재일.
《미키 17》도 정재일.
그리고 2026년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도 정재일입니다.
같은 사람이 만든 음악인데 정말 같은 작곡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릅니다.
《기생충》에서는 바로크 음악처럼 우아하고 정교합니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어린아이가 부는 것 같은 서툰 리코더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음악을 극도로 아껴온 이창동의 《가능한 사랑》에서는 다시 자신의 목소리를 낮춥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이렇게 바꿔볼 수 있습니다.
도대체 '정재일다운 음악'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더 재미있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같은 정재일인데 봉준호 영화와 이창동 영화에서는 왜 이렇게 다르게 들릴까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정재일. 하지만 그의 음악을 하나의 스타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정재일 음악을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
한스 짐머라고 하면 거대한 사운드와 반복되는 리듬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존 윌리엄스라고 하면 선명한 멜로디와 오케스트라가 생각납니다.
엔니오 모리코네 역시 몇 소절만 들어도 그를 떠올리게 만드는 음악적 언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재일은 어떨까요?
조금 어렵습니다.
클래식이 나오다가,
전자음악이 나오고,
록의 에너지가 느껴지다가,
한국 전통음악의 흔적이 나타납니다.
어떤 작품에서는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사용하고, 어떤 작품에서는 초등학교 음악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리코더 하나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정재일 자신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2026년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에 대해 흥미로운 표현을 했습니다.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 나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특정 장르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정재일의 영화음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그에게 중요한 질문은
“나는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인가?”
보다
“이 영화에는 어떤 음악이 필요한가?”
에 더 가까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기생충》의 정재일 — 우아한데 어딘가 가짜 같다
봉준호와 정재일의 본격적인 영화 협업은 《옥자》에서 시작됐고, 《기생충》과 《미키 17》로 이어졌습니다.
두 사람의 작업 관계에서 흥미로운 점은 봉준호가 음악에 관해 상당히 구체적인 감독이라는 것입니다.
정재일은 봉준호에 대해 음악에 대한 비전이 매우 세밀하면서도 동시에 작곡가에게 창작할 공간을 주는 감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봉준호가 연주하는 하나의 악기가 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봉준호가
“이 작곡가처럼 만들어주세요.”
라고 주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대신 장면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감정과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현악기, 타악기, 피아노 같은 구체적인 악기까지 제안합니다.
《기생충》에서는 한 가지 중요한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바로크.
봉준호는 시나리오를 쓰던 시기 바로크 음악을 많이 듣고 있었고, 정재일에게 그 방향을 제안했습니다.
문제는 정재일이 정규 작곡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발디와 바흐를 찾아 듣고,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반복해서 들으며 바로크 음악의 언어를 몸에 익혔다고 합니다.

《기생충》에서 봉준호가 던진 '바로크'라는 아이디어는 정재일을 거쳐 우아하면서도 어딘가 기묘한 음악으로 변했다.
그런데 완성된 음악은 진짜 바로크가 아니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정재일은 바로크를 공부했지만 완벽하게 재현하지 않았습니다.
비발디도 들어가고,
슈베르트도 섞이고,
한국적인 옛 대중음악의 느낌도 들어가고,
심지어 자신이 좋아했던 록 음악의 감각까지 스며들었습니다.
정재일은 자신의 음악을 일종의 '가짜 바로크(pseudo-Baroque)'처럼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 실패 아닌 실패가 오히려 《기생충》과 절묘하게 맞았습니다.
왜냐하면 영화 속 기택 가족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대학생이 아닌데 대학생인 척하고,
미술치료사가 아닌데 전문가인 척하고,
전문 운전기사가 아닌데 기사인 척하고,
가사도우미 소개업체도 없는데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모두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부잣집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음악까지
'진짜 바로크인 척하는 음악'
인 셈입니다.
정재일 자신도 이 점을 가난한 가족과 연결해 설명했습니다.
우아해지고 싶지만 무언가 조금 부족하고, 그래서 어딘가 가짜처럼 느껴지는 음악.
그것이 오히려 영화와 맞았습니다.
〈믿음의 벨트〉가 재미있는 진짜 이유
대표적인 곡이 〈믿음의 벨트(The Belt of Faith)〉입니다.
기택 가족이 박 사장 집에 한 사람씩 침투하는 유명한 몽타주에 등장합니다.
화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냉정하게 생각하면 꽤 악랄합니다.
거짓말을 하고,
사람을 속이고,
기존 운전기사와 가정부를 일자리에서 밀어냅니다.
그런데 음악은 우아합니다.
마치 궁정에서 귀족들이 걸어 다닐 것 같은 음악이 흐릅니다.
앞선 봉준호 편에서 이 장면을 '화면과 음악의 충돌'이라는 관점으로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작곡가 쪽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재일은 봉준호가 원하는 아이러니를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기생충》의 음악에는 봉준호와 정재일이 동시에 있습니다.
봉준호가 방향을 제시하고,
정재일이 그 방향을 자신의 음악 언어로 바꿉니다.
이 관계를 정재일은 꽤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봉준호는 구체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을 믿고 창작의 공간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표현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봉준호가 영화의 건축도를 그린다면, 정재일은 그 건물 안에 소리를 설계합니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여기서 잠시 《오징어 게임》으로 가보겠습니다.
봉준호와 이창동을 비교하는 글인데 굳이 《오징어 게임》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재일이라는 작곡가의 특징을 가장 쉽게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기생충》에서는 그렇게 우아한 현악기를 사용했던 사람이 《오징어 게임》에서는 갑자기 리코더를 붑니다.
대표곡 〈Way Back Then〉입니다.
초등학교 음악시간이나 운동회에서 들어봤을 것 같은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불편합니다.
생각해보면 《오징어 게임》의 세계 자체가 그렇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줄다리기.
구슬치기.
모두 어린 시절의 놀이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목숨을 걸고 합니다.
그러니 음악 역시
어린 시절의 소리인데 무섭습니다.
정재일은 일부러 리코더를 완벽하게 연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불완전함 자체가 음악의 일부가 됩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도 이런 깨지고 불완전한 소리를 자신의 작업과 연결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미지 ③ — 《오징어 게임》]
추천 이미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 또는 운동장 전경
캡션: 《기생충》의 우아한 현악기와 《오징어 게임》의 서툰 리코더.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작품 속 모순을 음악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그러니까 '정재일 스타일'은 악기가 아니다
여기까지 오면 처음 질문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정재일의 스타일은 무엇일까요?
현악기일까요?
바로크일까요?
전자음악일까요?
피아노?
리코더?
아마 그 어느 하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의 특징은
작품에 따라 자신의 음악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이런 작곡가에게 아주 흥미로운 감독이 찾아옵니다.
음악을 적극적으로 영화 구조 안에 집어넣는 봉준호와 오랫동안 작업해온 정재일이 이번에는
음악을 가능한 한 적게 사용하려는 감독을 만났습니다.
이창동입니다.
이창동이 정재일을 만났다 — 《가능한 사랑》
2026년 이창동은 《버닝》 이후 8년 만에 신작 《가능한 사랑》을 선보였습니다.
전도연, 설경구, 조여정, 조인성이 출연하고, 정재일이 음악감독을 맡았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 데이터베이스에도 정재일이 음악감독으로 공식 등록돼 있습니다.
영화는 해고된 노동자 호석과 그의 아내 미옥, 그리고 이들을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와 그의 남편 상우라는 서로 다른 삶의 두 부부를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드디어 아주 흥미로운 조합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창동 + 정재일.

음악을 아껴온 이창동과 작품에 따라 자신의 음악 언어를 바꾸는 정재일. 《가능한 사랑》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났다.
이창동이 정재일에게 한 주문
여기서 가장 궁금했던 것이 있습니다.
이창동은 정재일에게 무엇을 부탁했을까요?
마침 《가능한 사랑》 공개 이후 이창동이 직접 음악 작업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창동은 자신이 원래 영화에서 음악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도 분명합니다.
음악이 영화 바깥에서 감정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화의 음악성이 외부에서 덧붙여지는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 안에 존재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을 정재일에게 전달했습니다.
요청은 명확했습니다.
음악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되, 영화의 구조와 감정은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게 해달라.
정재일은 그 요구를 정확히 이해했고, 이창동은 완성된 결과가 자신이 원했던 것과 잘 맞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대목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봉준호도 정재일에게 구체적인 주문을 합니다.
이창동도 구체적인 주문을 합니다.
그런데 방향이 전혀 다릅니다.
봉준호는 음악을 넣고, 이창동은 음악을 덜어낸다
봉준호는 《기생충》에서 말합니다.
바로크.
현악기.
집중된 사운드.
영화의 상승과 하강.
장면과 음악 사이의 아이러니.
정재일은 그 주문을 받아 음악을 적극적으로 영화 구조 안에 넣습니다.
반면 이창동의 주문은 반대 방향입니다.
최소한으로.
하지만 구조와 감정은 전달되도록.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봉준호에게 음악은 영화의 구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화면과 충돌하기도 하고,
장르를 바꾸기도 하고,
인물들의 행동을 아이러니하게 바라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반면 이창동은 음악이 관객의 감정을 먼저 결정해버리는 것을 경계합니다.
영화 자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리듬과 감정이 있고, 음악은 그것을 덮어서는 안 됩니다.
《가능한 사랑》에 대해 이창동은 영화 자체에 이미 템포와 리듬이 존재한다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결국 같은 정재일에게 두 감독이 요구한 것은 이런 차이였던 셈입니다.
봉준호 — 영화의 구조 속으로 들어와라.
이창동 — 영화의 구조를 느끼되 너무 앞에 나오지는 마라.
같은 작곡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이유
여기서 영화음악의 재미있는 본질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흔히 영화음악도 작곡가의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스 짐머의 음악.
존 윌리엄스의 음악.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정재일의 음악.
물론 맞습니다.
하지만 영화음악은 작곡가 혼자 만드는 음악이 아닙니다.
이미 화면이 있습니다.
배우가 있습니다.
대사가 있습니다.
촬영이 있습니다.
편집의 리듬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독이 있습니다.
작곡가는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같은 작곡가가 전혀 다른 음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오히려 좋은 영화음악가일수록 그래야 할지도 모릅니다.
정재일에게 중요한 것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인지 모른다
정재일의 여러 인터뷰를 따라가다 보면 흥미로운 특징이 보입니다.
그는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작품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려고 합니다.
《기생충》을 만들 때는 자신이 익숙하지 않았던 바로크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봉준호가 원하는 소리를 찾기 위해 비발디와 바흐를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잘된 것도 아닙니다.
정재일은 《기생충》 작업 초기에 봉준호에게 상당히 많은 곡을 거절당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때마다 봉준호는 단순히
“별로예요.”
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이 장면에서는 왜 이 감정이 맞지 않는지를 설명했다고 합니다.
정재일은 다시 듣고,
다시 만들고,
다시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창동을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더 크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적게 연주할 수 있는가
가 중요한 과제가 됐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정재일의 가장 큰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보다
영화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먼저 듣는 능력.
정재일 음악에는 '정재일'이 없는 걸까?
여기에서 조금 역설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작품마다 음악이 이렇게 달라진다면
정재일만의 색깔은 없는 걸까요?
저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기생충》이 필요로 하면 바로크를 공부합니다.
《오징어 게임》이 필요로 하면 일부러 서툰 리코더를 붑니다.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필요하면 오케스트라를 사용하고,
불완전한 소리가 필요하면 완벽하게 연주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창동이
“음악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싶다”
고 이야기하면 자신의 목소리를 낮춥니다.
그러면서도 음악을 따라가다 보면 묘하게 한 사람이 보입니다.
아마 정재일의 정체성이 특정 악기나 멜로디에만 있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 안에서 사용할 음악 언어를 새로 찾는 것.
그것이 오히려 정재일의 스타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한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 나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는 표현이 꽤 정확하게 들립니다.
봉준호의 정재일과 이창동의 정재일
결국 같은 정재일인데 음악이 다른 이유는 단순합니다.
영화가 다르고 감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당연한 사실이 영화음악에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봉준호와 함께할 때 정재일은 영화의 구조 안으로 적극적으로 들어갑니다.
《기생충》에서는 우아한 바로크풍 음악을 통해 계급과 위장, 아이러니를 동시에 만들어냅니다.
봉준호의 정재일은
영화의 구조와 함께 움직이는 정재일입니다.
반면 《가능한 사랑》에서 이창동이 요구한 것은 절제였습니다.
음악은 최소한으로.
하지만 영화의 구조와 감정은 전달되도록.
이창동의 정재일은
영화가 이미 가지고 있는 리듬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순간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정재일입니다.

같은 작곡가가 감독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을 만든다. 그 변화 자체가 정재일 영화음악의 중요한 특징이다.
좋은 영화음악가는 자신의 음악을 얼마나 버릴 수 있는 사람일까
정재일의 음악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이런 질문에 도착합니다.
좋은 영화음악가는 자기 스타일이 강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영화가 요구한다면 자신의 스타일조차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일까요?
《기생충》의 바로크와
《오징어 게임》의 리코더,
그리고 《가능한 사랑》의 절제된 음악은
겉으로만 보면 같은 사람이 만든 음악이라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재일은 자신의 음악을 영화 위에 올려놓지 않습니다.
먼저 영화 안으로 들어갑니다.
감독이 무엇을 원하는지 듣고,
영화의 리듬을 듣고,
인물이 무엇을 말하지 않고 있는지 듣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음악을 만듭니다.
그래서 정재일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음악에서 공통된 멜로디를 찾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보다
그가 감독의 말을 어떻게 듣는지,
그리고
그 말을 어떻게 음악으로 번역하는지
살펴보는 편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결국 영화음악은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이번 글을 쓰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정재일이라는 한 작곡가를 통해 감독의 음악관이 훨씬 선명하게 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봉준호가 정재일을 만나면 《기생충》의 음악이 나옵니다.
이창동이 정재일을 만나면 《가능한 사랑》의 음악이 나옵니다.
작곡가는 같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영화음악은 작곡가 혼자 만드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독과 작곡가 사이.
화면과 소리 사이.
말과 침묵 사이.
그 사이 어딘가에서 영화음악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다음에 《기생충》이나 《가능한 사랑》을 보게 된다면 음악이 좋은지 나쁜지만 듣기보다 이런 질문을 한번 해보면 좋겠습니다.
“이 음악 뒤에서 감독과 작곡가는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그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영화음악이 전보다 훨씬 재미있게 들립니다.
그리고 정재일이라는 작곡가가 왜 이렇게 서로 다른 감독들의 영화에서 계속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어쩌면 정재일의 가장 강한 개성은
자기 목소리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세계에 들어가 매번 새로운 목소리를 찾아내는 능력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리즈 함께 읽기
2편 — 박찬욱과 이창동, 두 감독은 영화음악을 어떻게 다르게 사용할까?
3편 — 봉준호 영화는 왜 웃다가 갑자기 무서워질까? 《살인의 추억》부터 《기생충》까지 영화음악의 비밀
4편 — 같은 정재일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 《기생충》과 《가능한 사랑》의 음악
참고자료
-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 《가능한 사랑》 작품 데이터베이스 — 정재일 음악감독 참여, 출연진 및 작품 정보 확인.
- 이창동 《가능한 사랑》 공개 인터뷰 — 음악을 최소화하면서도 영화의 구조와 감정을 전달해달라고 정재일에게 요청한 작업 과정.
- BFI 정재일 인터뷰 — 《기생충》의 바로크 음악, 봉준호와의 작업 방식 및 음악 제작 과정.
- Ticketmaster UK 정재일 인터뷰 — 봉준호의 구체적인 음악적 비전과 작곡가에게 주는 창작의 자유에 관한 설명.
- The Guardian 정재일 인터뷰(2026) — 음악적 정체성, 즉흥성과 《기생충》·《오징어 게임》 작업에 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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