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과 이창동의 영화음악은 무엇이 다를까? 《올드보이》와 《헤어질 결심》의 조영욱 음악부터 《버닝》의 모그와 마일스 데이비스까지, 두 감독이 음악과 침묵을 사용하는 방식을 비교해본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두 사람이 있다.
박찬욱과 이창동.
두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같은 한국영화인데도 전혀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박찬욱의 영화에는 정교하게 설계된 화면이 있다.
카메라가 움직이고, 색채가 충돌하고, 편집이 리듬을 만든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음악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반대로 이창동의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사람이 걷는다.
밥을 먹는다.
대화를 한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바람이 불고 자동차가 지나간다.
음악도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박찬욱은 음악을 많이 쓰는 감독이고, 이창동은 음악을 쓰지 않는 감독이라고.
그런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두 감독 모두 영화음악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단지 음악에게 맡기는 역할이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를 따라가다 보면 두 감독이 영화와 관객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박찬욱과 이창동. 두 감독 모두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음악과 이미지의 관계를 만드는 방법은 상당히 다르다.
박찬욱에게 영화음악은 '리듬'이다
박찬욱의 영화음악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한 사람을 이야기해야 한다.
음악감독 조영욱이다.
두 사람의 오랜 협업은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시작해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으로 이어졌다.
박찬욱은 조영욱을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표현할 정도로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왔다.
그런데 박찬욱에게 음악은 단순히 장면의 분위기를 만드는 배경음악이 아니다.
2026년 칸영화제가 공개한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상당히 명확하게 설명했다.
음악은 개별 장면에 감정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은 따로 있다.
영화 전체에 적절한 리듬을 부여하는 것.
흥미로운 것은 박찬욱이 여기에 한 가지를 더 포함시킨다는 점이다.
음악이 없는 침묵의 순간까지 영화의 리듬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기억해두면 박찬욱의 영화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올드보이》 — 폭력적인데 음악은 우아하다

잔혹한 이미지와 우아한 음악. 《올드보이》에서는 서로 다른 감각의 충돌 자체가 영화의 스타일이 된다.
《올드보이》의 이야기는 끔찍하다.
감금.
폭력.
복수.
그리고 충격적인 비밀.
그런데 영화를 떠올려보면 음악은 의외로 아름답고 우아하다.
왈츠가 등장하고 현악기가 흐른다.
폭력적인 이미지 위에 아름다운 음악이 올라간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음악이 화면의 감정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잔인한 장면이라고 해서 음악까지 단순히 잔인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움직인다.
폭력적인 이미지 + 우아한 음악.
그 충돌이 박찬욱 영화 특유의 감각을 만들어낸다.
끔찍하다.
그런데 아름답다.
잔인하다.
그런데 우아하다.
관객이 하나의 감정으로 편안하게 정리할 수 없게 만든다.
박찬욱에게 음악은 화면을 설명하는 해설자가 아니라 화면과 충돌하면서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이미지에 가깝다.
이창동은 음악을 왜 그렇게 아껴 쓸까?


이창동의 영화에서는 음악이 물러난 자리에 배우의 얼굴과 생활의 소리가 들어온다.
이창동은 오랫동안 영화음악을 최대한 절제해왔다.
《버닝》을 발표했을 당시 그는 그 이유를 직접 설명했다.
그에게 현실 공간의 소리는 원래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영화음악은 영화 바깥에서 집어넣은 소리였다.
그래서 이전 작품에서는 음악을 가능한 한 절제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이창동 영화의 음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음악은 강력하다.
슬픈 피아노가 흐르면 관객은 슬픔을 느낀다.
불안한 현악기가 등장하면 무언가 위험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음악은 관객의 감정을 아주 쉽게 움직일 수 있다.
이창동은 바로 그 힘을 경계한다.
음악이 관객에게
"여기에서는 슬퍼하세요."
"여기에서는 긴장하세요."
라고 먼저 말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양》이나 《시》에서는 감정적으로 중요한 순간에도 음악이 물러나 있는 경우가 많다.
대신 다른 것이 들린다.
사람의 목소리.
발소리.
자동차.
바람.
숨소리.
그리고 침묵.
이창동에게 음악이 없는 공간은 빈 공간이 아니다.
현실의 소리가 들어갈 공간이다.
그런데 《버닝》에서는 음악이 달라졌다

《버닝》에서 이창동은 이전 작품보다 적극적으로 음악을 사용했다. 그러나 음악이 장면을 설명하는 방식은 피했다.
《버닝》에서는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음악감독 모그(Mowg)가 참여하면서 이전 이창동 영화보다 음악이 적극적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창동의 주문은 독특했다.
그가 원한 것은 아름다운 멜로디가 아니었다.
음악인지 소음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 음악.
이창동은 모그에게 음악이 장면에 종속되지 않고 음악 그 자체로 존재하기를 원한다고 주문했다.
보통 영화음악은 장면의 감정을 증폭한다.
추격 장면에서는 긴장을 높이고,
사랑 장면에서는 로맨틱한 감정을 높인다.
하지만 《버닝》에서는 반대로 가려고 했다.
음악이 장면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관객은 그 음악 자체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버닝》의 음악은 때때로 소음처럼 들린다.
화면은 아름다운데 음악은 불안하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데 이상하게 긴장된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상상인지 알 수 없는 영화의 세계와 음악이 묘하게 닮아 있다.
해미의 춤 — 이창동 영화음악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장면

노을, 해미의 춤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 《버닝》에서 음악은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더 복잡하게 만든다.
《버닝》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가운데 하나가 해미의 춤이다.
해가 지고 있다.
해미가 노을을 등지고 춤을 춘다.
종수와 벤은 그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이 흐른다.
사용된 음악은 루이 말 감독의 1958년 영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를 위해 마일스 데이비스가 만든 음악이다.
이창동은 이 곡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재즈가 가진 자유로운 느낌이 해미의 춤에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은 것처럼 흘러가는 재즈의 느낌.
동시에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라는 제목이 가진 불길한 느낌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장면에는 서로 다른 감정이 동시에 존재한다.
아름답다.
자유롭다.
외롭다.
불안하다.
어딘가 불길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장면의 중간에서 음악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영화 연구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약 251초에 달하는 이 긴 숏에서 음악은 133초 정도가 지나면 멈춘다.
그다음부터는 시골의 현실음이 음악의 자리를 대신한다.
그리고 해미의 감정도 변하기 시작한다.
자유롭게 춤추던 해미가 울기 시작한다.
음악이 감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이 사라지는 것까지 장면의 일부가 된다.
이 장면은 이창동이 음악과 침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헤어질 결심》 — 박찬욱은 음악으로 사랑을 설계한다

《헤어질 결심》에서는 음악과 이미지가 반복되면서 사랑과 죽음, 산과 바다를 하나의 감정으로 연결한다.
이제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으로 가보자.
이 영화에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사용된다.
처음부터 영화 전체에 반복적으로 사용할 계획이었던 것은 아니다.
조영욱 음악감독에 따르면 원래 각본에서는 기도수가 산을 오르는 장면에 이 음악이 등장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편집본을 본 조영욱은 이 음악이 영화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장면에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박찬욱은 처음에는 망설였다.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너무 유명하게 사용된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사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고 영화의 다른 부분에도 말러를 사용했다.
그 결과 말러의 음악은 단순한 삽입곡을 넘어선다.
산.
바다.
사랑.
죽음.
기억.
영화 곳곳에 떨어져 있던 이미지들이 반복되는 음악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박찬욱에게 음악은 이렇게 영화의 서로 다른 장면을 하나의 감정적 구조로 묶는 역할까지 한다.
사실 《헤어질 결심》은 노래에서 시작된 영화이기도 하다
《헤어질 결심》에서 음악이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박찬욱은 이 영화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정훈희의 노래 〈안개〉를 꼽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 노래를 좋아했고 이후 송창식이 부른 다른 버전도 좋아하게 됐다.
그러다 이런 생각을 했다.
정훈희의 목소리와 송창식의 목소리를 함께 사용한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그리고 자연스럽게 안개가 낀 도시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를 떠올렸다.
즉 《헤어질 결심》에서는 완성된 영화에 음악을 붙인 것만이 아니다.
음악이 영화의 시작점 가운데 하나였다.
이 점은 박찬욱이 음악을 얼마나 구조적인 요소로 생각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버닝》과 《헤어질 결심》, 같은 음악인데 사용법은 정반대다
두 영화를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더욱 선명해진다.
《버닝》의 마일스 데이비스는 하나의 순간을 열어놓는다.
음악이 등장해도 우리는 그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오히려 질문이 늘어난다.
반대로 《헤어질 결심》의 말러는 영화 곳곳을 연결한다.
떨어져 있던 장면과 이미지가 음악을 통해 하나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조금 과감하게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창동의 음악은 장면을 열어놓는다.
박찬욱의 음악은 장면들을 연결한다.
이 차이가 흥미롭다.
박찬욱은 음악을 '편집'처럼 사용한다
박찬욱의 영화를 다시 볼 때 음악과 함께 살펴볼 것이 하나 있다.
편집이다.
《올드보이》나 《아가씨》, 《헤어질 결심》을 보면 음악과 화면의 움직임이 매우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카메라의 이동.
배우의 움직임.
컷의 전환.
음악의 리듬.
이것들이 서로 맞물린다.
그래서 박찬욱 영화에서는 음악이 없어지면 장면의 감정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움직임 자체가 달라질 것처럼 느껴진다.
박찬욱이 음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영화 전체의 리듬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에게 음악은 귀로 듣는 장식이 아니다.
촬영과 미술, 편집과 함께 영화를 설계하는 요소다.
이창동은 음악을 '현실'과 경쟁하게 한다
이창동은 다른 방향으로 간다.
음악이 들어오면 현실의 소리가 밀려난다.
바람.
자동차.
사람이 걷는 소리.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
숨소리.
멀리서 들리는 생활의 소리.
이런 것들이 영화음악 때문에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밀양》이나 《시》에서는 음악이 없는 순간이 길다.
대신 현실의 소리가 전면으로 나온다.
이것은 단순히 영화를 현실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선택만은 아니다.
관객에게 인물을 판단할 시간을 남겨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음악이 먼저 감정을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창동은 관객에게
"이 장면을 이렇게 느껴라."
라고 말하기보다,
"이 사람을 조금 더 바라봐라."
라고 말하는 감독에 가깝다.
그런데 박찬욱과 이창동에게 공통점도 있다
여기까지 보면 완전히 반대인 것 같지만 흥미로운 공통점도 있다.
두 감독 모두 관습적인 영화음악 사용법을 경계한다.
이창동은 음악이 장면의 감정을 자동으로 증폭하는 방식을 피하려 한다.
박찬욱 역시 음악을 단순한 감정 설명에 머물게 하지 않고 영화 전체의 구조와 리듬 속에서 생각한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침묵을 음악의 반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도 재미있다.
박찬욱은 영화의 리듬에는 음악이 없는 침묵까지 포함된다고 직접 말한다.
이창동에게도 음악이 없는 공간은 비어 있지 않다.
현실의 소리가 들어간다.
결국 두 감독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아무 음악도 들리지 않는 순간 역시 감독이 선택한 하나의 소리라는 것을.
결정적인 차이는 관객과의 관계다
두 감독의 차이를 한 문장씩 정리해본다면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박찬욱
"내가 설계한 감각의 세계로 들어오세요."
음악과 촬영, 미술과 편집이 정교하게 결합한다.
관객은 감독이 만든 감각의 미로 속으로 들어간다.
음악은 그 미로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이창동
"나는 조금 물러날 테니 당신이 바라보세요."
음악도 물러난다.
카메라도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침묵과 현실의 소리가 남는다.
관객은 그 빈 공간을 자신의 감정으로 채워야 한다.
그래서 박찬욱 영화를 보고 나오면 어떤 장면과 음악이 함께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이창동 영화를 보고 나오면 특정한 멜로디보다 어떤 감정의 잔향이 남는다.
박찬욱은 음악을 많이 쓰고 이창동은 적게 쓴다?
처음에는 이렇게 정리하기 쉽다.
박찬욱은 음악을 많이 쓰는 감독.
이창동은 음악을 적게 쓰는 감독.
하지만 조금 깊이 들어가면 이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박찬욱 역시 침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창동 역시 《버닝》에서는 음악을 적극적으로 실험했다.
결국 차이는 음악의 양이 아니다.
음악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의 차이다.
박찬욱에게 음악은 이미지와 만나 영화의 리듬을 설계한다.
이창동에게 음악은 이미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관객에게 해석할 공간을 남긴다.
한쪽은 결합한다.
다른 한쪽은 거리를 둔다.
하지만 두 감독이 도달하려는 곳에는 공통점도 있다.
관객이 단순히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영화를 몸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것.
어쩌면 그래서 두 사람의 영화는 전혀 다르게 보이면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좋은 영화음악에 관한 질문도 여기에서 조금 달라진다.
좋은 영화음악은 아름다운 멜로디일까?
장면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음악일까?
박찬욱과 이창동의 영화를 함께 보고 나면 다른 대답도 가능해진다.
좋은 영화음악은 감독이 영화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들리는 음악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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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시》·《버닝》 그리고 《가능한 사랑》, 침묵까지 음악으로 만드는 감독
앞선 글에서는 이창동 영화만 따로 놓고 음악과 침묵의 관계를 살펴봤다. 이번 글과 함께 읽으면 《버닝》에서 왜 음악 사용법이 달라졌는지도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인다.
참고자료
- Festival de Cannes, Inside Park Chan-wook's Creative Process
- Festival de Cannes, Decision to Leave — Interview with Director Park Chan-wook
- MovieMaker Magazine, Slow-Burn: Director Lee Chang-dong on Storyboarding, Shooting, Lighting, and Scoring Burning
- Cinema Scope, Burning — Lee Chang-dong Interview
- Composer Magazine / Spitfire Audio, Composer Jo Yeong-wook on Shaping the Sound of Park Chan-wook's Films
- Film Criticism, Beyond the Auteur: South Korea's Domestic Independents as National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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